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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밥

2012. 12. 18. 10:13 | Posted by 이승현논설실장 trala
이른 시기에 활짝 꽃을 피우는 것은 수학자만이 아니다. 예술가도 그렇다. 1985년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18세기 당대 문화권력인 살리에리를 질투의 화신으로 만드는 것으로 묘사된 모차르트는 5세 때 작곡을, 6세 때 연주 여행을 시작했다. 첫 교향곡은 8세 때 만들었다. 모차르트뿐인가. 신동 출신 음악가는 멘델스존, 슈베르트 등 두 손으로 못 꼽을 만큼 많다.

피카소는 친구 카를로스 카사헤마스의 자살을 다룬 ‘초혼’으로 ‘청색시대’를 장식했다. 20세기 회화 거장으로 발돋움한 계기였다. 20세 때였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한 것도 20대 때의 일이다.

문재(文才)가 일찍 개화하는 경우도 숱하다. 매월당 김시습은 5세 때 ‘중용’과 ‘대학’에 통달했다고 한다. 앞서 3세 때에는 유모가 보리방아 찧는 것을 보고 시를 지었다. “무우뇌성 하처동 황운편편 사방분(無雨雷聲 何處動 黃雲片片 四方分·맑은 날 천둥소리 어디서 울리나, 누런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날리네.)”

신동·천재만이 문화예술계에 몸담으라는 법은 없다. 그 반대가 오히려 대세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자 데이비드 갈렌슨은 ‘늙은 대가와 젊은 천재들’에서 대기만성형들의 업적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설득력 있게 지적한다.

신동·천재가 아니라면 생계라는 골칫거리와 한결 절박하게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가의 밥’ 문제다. 살아생전 빛을 못본 해바라기의 화가 고흐 같은 신세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재능이 넘쳐도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런 물적·심적 고통을 예술가인 척하는 무수한 사이비들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 그 괴로움 또한 크다. 예술은 정말 힘든 길이다.

소설가 김영하씨가 트위터, 블로그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얼마 전 숨진 영화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와 관련해서는 “고은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부터 온라인상에서 벌인 논쟁이 최씨 죽음과 맞물려 격화하자 부담감이 컸던 모양이다.

김씨가 떠난 논쟁 공간에는 식은 밥덩이처럼 ‘예술가의 밥’ 문제가 남았다. ‘예술가 스스로 밥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김씨 주장이 왜 공격 대상이 돼야 했는지 의문도 남았다. 씁쓸한 여운을 털기 위해서라도 김씨를 윽박지른 이들에게 묻고 싶다. ‘누가 (국가와 사회가 보살펴야 할) 예술가인지’는 대체 어찌 분간해낼 작정이냐고.

이승현 논설위원

 

 

201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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