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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약속, 큰 약속

2013. 1. 6. 17:57 | Posted by 이승현논설실장 trala
국가는 무엇으로 다스릴까. 신뢰와 신의다. 적어도 공자에 따르면 그렇다. 공자는 ‘논어’의 ‘학이’편에서 “도천승지국 경사이신(道千乘之國 儆事而信)”이라고 했다. 천대의 전차를 보유한 나라를 이끌어 가려면 일을 경건히 하고 믿음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의가 없으면 정치도 백성도 존립할 수 없다”고도 했다.
 신뢰와 신의는 어디서 나올까. 약속을 지키는 데서 나온다. 쉽지 않은 일이다. 새해 첫날에 담배나 술을 끊겠다고, 매일 운동을 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이가 많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다. 하지만 한결같이 지키는 이는 드물다. 대개 작심삼일에 그치고 만다. 타인과 한 약속도 매한가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신뢰와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작심삼일 부류와는 다르다. 대다수 국민도 인정한다. 큰 자산이다. 정치권은 자산 가치를 꿰뚫어 본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대중교통법 개정안(택시법)과 관련해 “대중교통 근간이 흔들리긴 하지만 약속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약속의 리더십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박선규 대변인은 한 술 더 떠 “박 당선인이 한 공약은 대통령 직무를 하면서 다 지킬 것”이라고 했다.
 달라지는 것이 많다. 약속의 리더십에 시동이 걸린 것이다. 올해부터 0∼5세 영·유아를 둔 가정에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보육료와 양육수당이 지급된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의 선별적 지원안은 폐기됐다.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여야가 합의 증액한 새해 예산 항목에는 이것만 있는 게 아니다. 대학등록금 부담 완화, 병사 월급 인상 등 굵직한 항목이 널려 있다.
 정치권이 약속을 지키면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 많다. 복지 공약은 더욱 그렇다. 반기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심쩍은 것도 허다하다. 다른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약속 이행 비용을 계속 감당할 수 있는지 묻게 된다. 매년 27조원에 이른다는 추가 복지예산 재원을 과연 누가 어찌 감당하나. 경제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에 미칠 해악은 없나. 국가 재정 현황과 글로벌 경제 난기류는 충분히 살핀 것인가.
 국가를 이끌 이들이 주목할 것은 박근혜표 복지 공약만이 아니다. 대내외 환경부터 눈여겨봐야 한다. 국리민복·부국강병의 꿈을 위해 어떤 처방이 필요한지도 밝은 눈으로 살펴야 한다. 약속의 크기로 따지면 이쪽은 크고 복지는 작다. 바쁘게 챙길 것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런 판국에 박근혜 공약의 가짓수가 200개가 넘는지, 안 넘는지나 헤아리고 몽땅 다 이행한다고 큰소리나 치면 국민 가슴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공자와 그 제자들도 믿을 신(信)에 방점을 찍으며 힘들게 험한 세파를 넘었다. 하지만 입 밖에 나온 말이라고 무조건 지킨 것은 아니다. 공자 풍채를 빼닮아 공자 사후에 대신 참배를 받았다는 제자 유약은 “믿음이 의에 가까우면 말은 실천할 수 있다(信近於義 言可復也)”는 어록을 남겼다. 박 당선인 측이 ‘약속의 정치’에 매달리기에 앞서 곱씹어야 할 어록이다.
 믿음에는 큰 믿음이 있고 작은 믿음이 있다. 의에 가까운 믿음은 큰 믿음이고,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의에 가깝지 않다면? 작은 믿음이다. 깨뜨릴 수 있다. 제자만 이런 어록을 남긴 게 아니다. 공자도 직접 “군자는 작은 믿음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경구를 남겼다. 맹자도 말했다. “대인은 말에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에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언행이 의에 부합하기만 하면 된다.”
 박 당선인은 늦기 전에 ‘논어’ ‘자로’편의 공자 어록을 새겨야 한다. 이런 내용이다.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고 행동에는 반드시 과단성이 있다. 이런 사람은 자기 고집을 꺾을 줄 모르는 소인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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